다른 미래를 물려주려면 지금 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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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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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정현, EBS PD) 저는EBS에서 다큐멘터리를만들고 있는 빈정현PD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출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짤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저희 다큐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짤입니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현재까지도 출산율 관련 보도에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이신 조앤 윌리엄스 교수이시고요.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깜짝 놀라시면서 하신 말씀이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댓글 반응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8천개 가까이 댓글이 달렸거든요.

"교수님을 기쁘게 해드려서 뿌듯합니다. 마음껏 분석 자료로 이용하세요."

"우린 앞에서든 뒤에서든 1등 아니면 안함."

"아직 놀라면 안 됩니다. 출산율은 더 내려갈 거니까요."

이외에도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의견들을 많이 달아 주셨어요.

저출생에 관한 작은 온라인 토론장이 형성된 겁니다.

사실 기뻐해야 되거든요 제작진은. 화제가 됐잖아요.

그런데 제작진으로서 이 다큐에서 가장 화제가 되길 바랐던 내용이 이 장면은 아니었어요.

망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앞으로 잘 해 나가보자고 만든 다큐였거든요.

그런데 이 짤이 이렇게 화제가 됐다는 건 지금의 출산율에 대한

국민들의 어떤 무력감, 자조 섞인 공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저출생 주제로 다큐를 맡게 되었을 때 진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PD로서 정말 다루고 싶지 않은 주제였어요.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이 문제에 답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출생 다큐를 기획하면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저희 팀 모두가 깨달았던 건

이 저출생 문제가 우리 사회 모든 문제와 닿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복합적인 문제이고

성별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 요소에

원인으로서든 결과로서든 이 저출생 문제가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경향이 계속 지속된다면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것이란 걸 머리로, 또 피부로 절감하게 됐습니다.

인구 피라미드의 변화인데요.

통계청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렇게 연도별로 스크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피라미드가 이렇게 샤샤샥 변해요.

제가 처음 이걸 해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공포였습니다.

인구는 줄어들 수 있죠. 그런데 모든 세대에서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왜냐면 많은 매체에서 이미 저출생 문제를 수십 년 동안 다뤄왔고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시감을 극복하고 싶었고 이 이슈에 직면하게 만들고 싶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을 찾고 싶었습니다.

성별, 세대, 지역 간 갈등 요소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미래세대까지 포괄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갈등이 아닌 변화와 연대의 동력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접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열망으로 저희 제작진이 <인구대기획-초저출생> 10편의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일, 가정 양립'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정책적이고 딱딱한 행정적인 용어죠.

개인적으로는 가장 다루고 싶었던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왜냐면 저도 여성이고, 일을 하고 있고 제 주변에서도 많이 접해온 문제였기 때문인데요.

처음에는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일을 포기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다이렉트로 담았을 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던 차에

KDI에 계신 최슬기 교수님의 연구를 접하게 됐습니다.

'남자가 출산휴가를 간다면?'이라는 연구였는데 아빠에게 의무적으로 1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분석한 내용이었습니다.

좀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접근해야겠다'

왜냐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이, 엄마가 어떻게 일과 양립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려고 했는데, 

남성이, 아빠가 어떻게 가정과 양립할 수 있는지로 패러다임을 바꿔보자.

따져봐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지만 일단 육아휴직,

아빠 육아휴직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혹시 아십니까? 1995년. 30년 전이죠.

그 시절에 누가, 어떤 분이 제일 처음 썼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추적기를 한번 담아보자.

세바시에도 이미 두 차례 출연하셨던 이동수씨와 그 추적의 과정을 함께 해 보기로 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이신데 두 번이나 육아휴직을 쓴 자칭 프로 육아휴직러셨거든요.

기사 검색으로 저희가 정말 많이 뒤졌는데요.

가장 저희가 찾을 수 있었던 오래된1호 분은 바로 이 분이셨습니다.

1996년 서울 교사 중에 남성1호로 쓰셨던 김인호 선생님이세요.

당시 중학교에 근무 중이셨고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아내가 아이를 돌볼 상황이 되지 않아서 무모하게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이건표 님은 2001년에 부산 공무원 중1호로 육아휴직을 쓰셨던 아빠입니다.

당시 아내분과TV를 보셨는데 일본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걸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내분이 약간 도발하신 것 같아요. 할 수 있냐고.

그래서 "할 수 있지!"해서"우리도 함께 해 보자" 하셨다고 해요.

이 두 분과 앞서 보여드렸던 이동수씨의 공통점은 뭐냐면 아내 분들이 경력단절 없이 계속 일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롯이 그 기간 동안 아빠인 본인이 육아를 담당하셨어요. 

세 분 모두 자기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이었고 자신을 바꿔놓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육아휴직을 쓰고 계신 또 육아 관련 제도를 사용하고 계신 여러 아빠들을 취재하면서 제가 깨달았던 건 

아빠 육아휴직이 아빠 본인에게뿐 아니라 아이에게, 아내에게, 가족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초창기에 비하면 계속 좋아지고는 있습니다. 그리고 느리지만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빠들의 사용률은 4%. 왜냐면 회사에서의 눈치, 경제적인 이유로 여전히 선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영업자, 프리랜서, 비정규직 같은 분들은 심지어 제도의 바깥에 있으시죠.

저는 이 의제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노동자를 아이를 돌보는 부모 혹은 예비 부모라고 전제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렇게 전제하면 정책이나 제도, 조직 문화 우리 사회 곳곳이 어떻게 바뀔까?

그렇다면 육아는 할 만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부모가 함께 육아할 수 있다면 말이죠.

 

스웨덴에 라떼파파라고 있습니다.

한 손에 라떼 한 잔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들을 지칭하는 표현인데요.

흔히 방송에서 스웨덴 사례를 다뤄야 할 때 많은 고민에 빠집니다.

왜냐면 되게 허무하거든요 스웨덴 사례를 보여드리는 게.

'스웨덴이니까 가능하지, 복지국가니까''우리랑 비교하는 건 안 맞지'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제가 이번에 새로 깨달은 건 스웨덴이 우리보다 훨씬 빨리 저출생 문제를 경험한 나라라는 겁니다. 

1800년대 중후반부터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서 출산율이급감했죠.

놀랍게도 100년 전 스웨덴은 저출생을 민족 존립의 위기로 보면서 피임방지법도 제정했었고요.

여성이 일을 안 해야 출산율이 늘거라고 생각해서 기혼여성 고용금지법도 발의가 됐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상상이 안 되시죠?

오늘의 스웨덴은 여성의 경제 참여율도 높고 출산율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복지국가 또한 될 수 있었던 데는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100년에 걸쳐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확실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로막는 방해물을 없애자. 그리고 불균형과 불평등을 해소하자. 

스웨덴의 철학은 평등. 사회적 평등, 그리고 성평등. 이 철학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들어진 때는 2005년입니다. 이제 20년이죠.

앞서 보여드렸던 인구 피라미드의 변화입니다. 이걸 좀 다른 방식으로도 보여드려 볼텐데요.

중위연령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국가의 인구를 나이순으로 쫙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에 있는 나이를 중위연령이라고합니다.

1960년에 19살이 우리나라 중위연령이었습니다.

2022년, 지금하고 비슷하죠. 45세가 중위연령이고요.

2050년엔 58세, 2070년엔 63세가 중위연령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놀라우시죠?

단순히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구 구조가 이렇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윗세대가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이 미래 세대는 현재 아동이거나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그런 존재들입니다.

2050년의 사회를 살아가야 할 청년들에게 그 사회가 너무 가혹한 사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인구 구조에 맞춰진 이 시스템이 오래 유지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다가올 사회에 대한 결정을 하는 건 지금의 세대들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방송에서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다큐에서, 방송이라서 할 수 있는 실험을 하나 해봤습니다.

10대부터 70대를 대상으로 한정책 투표 실험을 한번 해 봤어요.

정년 연장과 청년 취업 지원 중에 한정된 정부 예산에서 어떤 정책에 더 시급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우선으로 투자해야할 교육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연금과 관련된 질문들도 던졌습니다.

투표가 끝났을 때 서프라이즈로 한번의 투표를 더 요청 드렸어요.

2050년의 사회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투표해달라고 요청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이나마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선택을 하신 분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세대, 다른 성별, 다른 삶에 대한 감수성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출생은 PD로서 정말 다루고 싶지 않은 주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저출생 문제를 굉장히 협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가 저출생으로 촉발된 혹은 저출생이 촉발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뇌리에 남았던 인터뷰 문장을 하나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국가나 사회나 개인이 모두 불편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사회 구조적인 변화, 시스템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려면요.

망한 대한민국을 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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