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뮤지엄] 아내를 위한 레시피 : '펜' 대신 '팬'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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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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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영학: 안녕하세요. 번역가 조영학입니다. 번역도 하고 글도 씁니다

번역서는 스티븐 킹, 존 르 카레, 로버트 해리스 등 주로 소설 중심으로 100여 편 정도 출간했습니다

저서는 공저 3권을 포함해 모두 7권을 썼고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에 칼럼 연재도 했습니다.

 


Q2.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대신 을 들게 되셨는지요?

 

조영학: 과거에 펜과 팬은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하는 상징이었어요

선비는 글을 쓰고 아내는 음식을 하고

펜은 이제 남녀 구분이 없어졌지만, 팬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남성이 하는 일은 가치 있고, 여성이 하는 일은 하찮다는 무의식이 남아있거든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요리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자 쉐프입니다

쉐프는 직업적 명예가 있고 주방에서 가장 권력 있는 위치입니다

반면, 여성 쉐프는 비교적 잘 보이지 않아요

이에 비해 노동환경 조건이 열악한 급식실 조리사는 대부분 여성이에요

그리고 가사노동의 축에 드는 가정에서의 요리는 엄마·아내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책의 부제, ‘펜 대신 팬을 들다, 단순히 부엌살림을 도맡았다는 의미를 넘어

이제 부엌살림의 성역할 구분마저 없애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펜 대신 팬을 들게 된 계기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년 전쯤에, 아내가 발을 다쳤어요

그때가 8월 한여름이었는데 제가 부축하며 병원에 오가느라 둘 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러는 거예요. “내가 다치는 바람에 애먼 남편이 고생한다라고

그때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결혼 후 고생만 시켰고

지금도 운전도 못 하는 남편 때문에 고생하면서 나한테 미안하다는 거예요미안해해야 하는 건 난데.

그래서 며칠간 고민을 하다가 불쑥 결심한 겁니다

변변치 못한 번역쟁이가 대단한 인물이 될 것도 아닌데

앞으로 남은 삶은 오로지 이 여자 행복을 위해 살자

그렇게 부엌살림을 반강제로 빼앗고 지금까지 결심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Q3. 아내를 위해 가장 처음 만든 음식과 다른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조영학: 아내를 위해 처음 만든 음식은 미역국입니다

결혼 2년 차에 아내 생일을 맞았는데, 돈이 없어 껌 한 통을 내밀며 생일 축하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내가 기가 막힌 듯 나를 보더니

우리 형편에 생일선물도 사치라며 선물은 서로 않기로 하고

저한테 대신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한 번도 생일 미역국을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미역국은 어느 음식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맛에 충실해요.

우리집 미역국은 늘 황태미역국이에요

황태와 미역을 참기름에 볶지 않고 대신 멸치육수를 내서 끓여요

소고기도, 굴도 넣고 해봤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맛은 담백하고 깊은 맛의 미역국이에요

오로지 아내를 위한 레시피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감자탕입니다

우리집 시그니처 음식이에요

처음엔 저렴하게 몸보신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다들 잘 먹더군요아마 100번은 했을 겁니다

김장 때면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둬 말려두니까 재료 걱정도 크게 안 해도 되고요

우거지, 시래기 반찬이 그렇습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는 것과 달리, 우리 집은 텃밭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데에서 시작하거든요

겨우내 말려둔 재료를 필요할 때마다 불려서 사용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도 질긴 껍질까지 벗겨내야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정말 손과 노력과 인내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입니다. 그래도 그 맛과 영양을 포기 못 합니다

시래기밥을 짓고 노지 달래를 캐어 달래장과 함께 내면 그만한 음식이 없어요.


 

Q4. 가정 안에서의 공동살림이 작가님께는 어떤 의미일까요?

 

조영학: 이 책을 쓴 이유가 나 이렇게 잘 먹고 잘 산다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살림을 떠맡았죠. 그런데, 이게 저를 타자화하는 경험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전통적인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러고 몇 년을 해보니까,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것들이 보이는 겁니다

타인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그 속에서 제 모습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 것이죠. 양성평등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도 그 시점이에요.

또 하나 변화가 있다면, 그렇게 이해의 폭이 넓어지니까 가족 내에서의 갈등도 조금씩 사라졌어요

예전 같으면 왜 저러나?’ 하면서 다투었을 일도 이젠 이해가 됩니다

가부장의 특권을 내려놓으면 가족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제가 더 행복합니다

아내와 목소리를 높여서 다툰 것도 한 15년 전이 마지막일 겁니다

부모가 가까우니까 아이들도 편안하게 부침 없이 크더군요.


 

Q5.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조영학: 한국 사회는 유리천장도 여전하고, 성별임금격차는 OECD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 살림을 전담해야 한다면

아마도 여러 요인에서 여성이 희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행복은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가능합니다

사회도 변해야겠지만, 남성도 더 이상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대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바뀌어야 사회도 바뀌겠죠.


 

Q6. 책을 발간하기까지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조영학: 몇 해 전, 양성평등 관련 토크쇼 비슷한 행사를 했습니다

사회자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질의 시간에 어떤 여성분께서 집에서 밥이나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무시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순간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더라고요

남자가 밥을 한다고 강연에도 부르고 책도 쓰게 하면서

여성이 하면 집에서 밥이나 하는 여자라느니 부엌데기라느니 하며 하찮게 여기죠

그래서 그날로 제 호를 붥덱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부엌데기의 약자에요

가족의 삶과 건강을 위해 혼신을 다해 희생하면서 얻은 호칭이잖아요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름. 책에 나오는 붥덱이라는 호칭은 그렇게 제 별명이자 호로 굳어졌어요.

늙은 남자가 집에서 밥상을 책임진다고 하면 요리에 취미가 있나 봐요.”, “재능이 있나 봐요하는데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 여자들은 솜씨가 좋아서, 취미가 있어서 처음부터 부엌으로 내몰렸습니까?” 

취미가 없다느니, 솜씨가 없다느니 하는 말은, 하기 싫다는 표현일 뿐이에요

세상엔 요리책도 많고 요리 영상도 많습니다

찔끔 해보고 나서 난 요리에 재능이 없어그러지 마시고요. 한두 번 해본 건 해본 게 아니에요

요리는 잘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Q7. 텃밭 가꾸기와 요리하기, 글을 쓰거나 번역하는 일에 있어 공통점이 있다면?

 

조영학: 글쎄요, 요리와 글쓰기는 확실히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일단 둘 다 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제가 텃밭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완성품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때때로 계획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해요. 물론 망하기도 하고요

좋은 재료에 상상력을 더해 잘 버무리면 그럴싸한 작품이 나옵니다

만드는 건 요리사와 작가이지만대개는 타인을 목표로 합니다

요리사는 손님, 작가는 독자층

무엇보다, 요리사도 작가도 유명한 일부만 화려하고, 나머지는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에서 인정도 안 해줍니다

제가 그래요. 집에서 밥이나 하는 붥덱무명 작가니까요

그래도 남이 읽고, 먹는 걸 보면 행복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둘 다 할수록 (실력이) 는다는 겁니다

남들은 요리에 취미가 있느니, 솜씨가 있느니 하지만요리도 글짓기도 잘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느는 거예요.

 

Q8. 오늘 토크뮤지엄 인터뷰 소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조영학: 요즘 은퇴 분위기라 번역도 소일거리이고 글은 가끔 청탁원고만 씁니다

여력이 있다면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어요

오래전에 <여백을 번역하라>는 번역이론서를 썼는데

기호뿐 아니라 기호를 둘러싼 여백을 함께 읽어야 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내용이었거든요.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만 보고 자신의 여백, 자신을 둘러싼 여러 상황을 못 보면 이기적이고, 편협해지죠

이렇게 사회가 경쟁 일변도로 가는 이유는, 자기 자신만을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여백을 읽는 법, 여백을 읽는 의미, 가치에 대해 공부하고 또 쓰고 싶습니다

기호로서의 나뿐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합쳐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도 너도 세상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가정 내에 양성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번 콘텐츠를 통해서 평등한 가족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이 콘텐츠의 주요 장면

00:42  '펜' 대신 '팬'을 들게 된 이유

02:35  아내를 위해 가징 처음 만든 음식과 다른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

04:20 가정 안에서의 공동살림의 의미 

05:55  책을 발간하기까지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일화

07:15 텃밭 가꾸기, 요리하기, 글/번역의 공통점 

08:13 토크뮤지엄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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