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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지, CPBC 기자) 네, 안녕하세요. 저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 전은지 기자입니다.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0.7명,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나라. 실제로 정말 그렇게 되고 있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첫째를 출산할 때는 집값 때문에 또 둘째 출산부터는 사교육비가 두려워서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저도 아이 낳고 "둘째 안 낳으세요?", "둘째는 있어야죠"라는 말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왜일까요. 돈 때문일까요? 아이 교육이 걱정돼서일까요?
맞습니다. 다 이유는 됩니다.
그런데요 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하나의 진실이 있더라고요. 바로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를 사랑할 시간도 돌볼 시간도 눈 맞출 시간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결국 시간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과거 OECD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이들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으로 조사됐습니다. 역시나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죠.
이 통계가 좀 너무 오래된 통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지난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연구는 없더라고요. 저는 이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를 고민할 때 시간을 중요한 화두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 '시간제 엄빠의 나라'는요. 맞벌이 부모들이 겪는 양육 현실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그간 우리가 지적해온 금전적 지원이나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는 사회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현재 33개월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데요.
제가 하루 중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집중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형적인 시간제 엄마인 저는 평일엔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깨우고 출근하고 칼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입니다.
사실 이때쯤이면 저는 너무 지쳐 있는데 아이는 텐션이 한창 올라가지고 아주 말똥말똥할 때거든요.
진짜 가끔은 좀.. 가끔은 정말 퇴근하고 몸이 부서질 것 같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치우고 아이 씻기고 좀 이렇게 따라다니다 보면 이제 하루가 끝납니다.
그렇게 같이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 나눌 때 그제야 아이 표정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데요.
아, 그땐 정말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자지?' '빨리 자야 되는데' '나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라는 게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워킹맘의 하루는 이렇게 반복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둘째를 낳겠다는 결심은 진작 접었습니다.
제작하면서 만난 맞벌이 부모들은 어땠을까요? 대부분 부모는 타인의 시간을 구매하면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엄빠들의 엄빠, 아이의 조부모에게 황혼 육아를 내모는 방식이죠.
그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낮 시간에 카페에 가거나 놀이터 가면 유모차 끌고 온 할머니들 정말 많으시거든요. 일명 '할마'분들 많이 뵈었었는데요.
옆에서 어른들 하는 얘기 듣고 있다 보면 손주 정말 예쁜데 아이 보는 거 너무 힘들다고 하세요.
그러다가는 손주 맡기는 딸 아들 흉보시고요. 사위 며느리 욕하기 시작하시더라고요.
좀 이런 목소리 듣고 싶어서 조부모 양육하시는 취재원들을 수소문을 했는데 이때 정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주변에 부탁도 해보고 육아 카페 이제 가입해서 고민 글 올리시는 분들한테 쪽지도 보내보고 했었는데요.
겨우 연락이 닿아서 취재하기로 한 할머님이 한 분 계셨거든요.
본인이 6일 내내 딸네 집에서 머물면서 아이를 봐주는데 온전히 주말 딱 이틀을 쉬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을 이제 취재하러 가기로 했는데 다시 전화를 주셨습니다.
"우리 딸이 자랑스러운 일 아니라고 인터뷰하지 말라네요"라고 하면서 결국 거절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왜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걸까?
내 아이에게는 오래 있어주지 못한다는 그 미안함에 또 우리의 부모한테는 양육의 부담을 짊어준다는 마음에 왜 이렇게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걸까?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무언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면서 부모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는 나라, 호주를 방문을 했었는데요.
그곳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엄격한 법들이 많아서 아이가 혼자 하교할 수 없고요. 하교는 무조건 부모가 도와줬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아이의 여가 활동에 참여하는 게 좀 당연한 분위기더라고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지켜보면서 제가 호주 부모들에게 한국의 늘봄학교를 소개를 했거든요.
늘봄학교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을 하겠다고 정부가 공적 돌봄을 강화하겠다며 만든 정책인데요.
늘봄학교에선 아침 7시부터 최장 9시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수 있습니다.
방과 후 수업도 듣고 또 학교에서 저녁도 먹을 수 있어요. 정말 좋죠.
그런데 이를 두고 호주 학부모들은 어떻게 반응을 좀 했을까요?
(‘시간제 엄빠의 나라’ 다큐 영상)
(제작진) 학생들을 늦은 시간까지 돌보기 위해 저녁 식사를 제공합니다.
(호주 학부모 1) 그럼 아이들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학교에서 지내는 건가요?
(제작진) 저녁 8시까지요.
(호주 학부모 1)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요?
(호주 학부모 2) 세상에. 좀 이상해요. 아주 이상해
(호주 학부모 3) 그리고 안타깝기도 하네요. (기쁨을) 놓치고 있는 거잖아요.
(전은지, CPBC 기자) 사실 이는 호주 부모들이 단편적으로 한국의 상황을 듣고 즉각적으로 낸 반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호주 부모들은 이러한 상황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저는 이 취재를 하면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다양한 공적 돌봄 체계가 물론 잘 구축돼야 하는 건데,
더 나아가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과 한 수많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내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여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 7월에도 OECD가 대한민국의 심각성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늦게까지 일하는 문화를 지적했거든요.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 연간 평균 노동 시간보다 155시간을 더 일하고 있죠.
부모들이 퇴근 후 자녀 직접 돌봄을 실천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에 실질적 확대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요.
저는 그 확대가 더 이상 회사의 재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를 사회가 나서서 장려하고 관리해야만 회사에서도 "너만 애 키우니?"라는 소리가 아니라
"아 너도 애 키우니?"라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우리 부모들은 나의 선택의 우선순위가 가족에 있다는 걸 좀 생각을 하면서 아이 일 때문이라면 좀 더 당당하게 양해 구하면서 눈치 보지 않을 용기 갖고 내 주변의 분위기부터 조금씩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정의 소중함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 다큐를 만들면서 제가 만난 부모들과 또 아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어요.
“너무 바빠서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해요”
더는 부모와 아이 모두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걸 아쉬워만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선 안 되겠죠.
한국에 저출산 문제는 거창한 지원이나 구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보장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
부모들이 시간제 부모로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우리의 생각을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양평원x세바시 특집 강연회 ’다른 일상을 상상하다’ #1편
시간 빈곤 사회에서 양육자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시간제 엄빠의 나라>(CPBC)*를 연출한 전은지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 ‘2024 제26회 양성평등 미디어상’ 방송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 이 콘텐츠의 주요 장면
00:57 시간 빈곤 사회에서 시간제 엄빠로 살아가기
02:09 워킹맘의 하루와 우리의 현실
06:31 더 나은 돌봄을 위하여
*본 콘텐츠는 양성평등한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해 양평원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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