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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닷물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송지효 배우의 체온을 빼앗았고
몇 번 잠수하지도 않았는데 손끝이 손끝의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물속에서는 위아래 방향조차 헷갈리고
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릿속은 하얘졌습니다
지금 저처럼 말이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말도 잇지 못했습니다
정말 스태프들이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저희 모두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단순하게 방송용이 아니라
자연에 대항해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순간이구나
우리는 흔히 해녀를 보면 강한 여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녀들의 강인함은 정말 타고난 걸까
딥다이브 코리아는 영국 BBC가 한국과 처음으로 만드는 국제 공동 제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BBC 측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원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막막했습니다
K-Pop, K-Food, K-Drama
세계적으로 익숙한 한국의 이미지들은
이미 너무 많이 소비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정말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끝에서 해녀를 떠올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방송에서는 익숙하고 진부하게 느낄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BBC 제작진에게는 처음 해녀를 설명했을 때 반응이 달랐습니다
산소통 없이 바다에 들어가 평생 물질을 하며
살아온 여성 공동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반응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 이루어지고 있나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그래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낯선 이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구나
그때 확신했습니다
해녀는 단순한 제주만의 문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걸요
어느 날 우연히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녀분들을 봤습니다
작은 체구에 물질 도구를 들고 젖은 옷 그대로 웃으면서 걸어오시는데
그 얼굴에는 버텨온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강해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아주 짧고 단촐했는데
그 안에 수십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가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궁금했던 것은 사람이 환경 속에서 이렇게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가 였습니다
해녀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여성들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머구리’라고 들어보셨나요
보통 이제 잠수복을 입고
그다음에 숨구멍이 있는 호수를 연결한 장비를 차고
바닷속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합니다
조선 시대에도 남성 잠수부 ‘포작인’들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깊은 바다에서
전복과 해산물을 채취했고 그렇게 채취한 것들은
대부분 곡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런데 곡물의 양은 점점 늘어났죠
거기에 관리들의 부정부패까지 더해지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할당량들이 내려왔습니다
결국 많은 포작인들은 견디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병들어 죽었고
어떤 사람은 제주를 탈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심각했는데 나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주 밖으로 나가는 길을 막아버렸죠
그리고 배를 만드는 것을 제한시켜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을 붙잡아 둔다고 해서
바다가 덜 위험해지는 건 아닙니다
결국 남성 잠수부는 줄어들었고
그렇게 부족해진 노동력을 여성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해녀의 역사는 자발적 선택의 역사라기보다
강제로 떠맡겨진 생존의 역사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게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고 밭을 일구고
동시에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제주도 참 돌이 많잖아요
돌이 많아서 농사하기가 참 힘듭니다
그리고 바람도 많잖아요
바람은 너무 거세서 삶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남자들은 더 큰 수입을 위해서 먼 바다로 나갑니다
몇 달씩 들어오지도 못하기도 하고
폭풍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면 여성은 자연스럽게
가족의 가장이 되는 겁니다
그 선택에는 준비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그 자리를 살아내야 하는 겁니다
조선시대의 제주 목사로 부임한 관리들이
한겨울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겨울에 얼어붙은 듯한 바다에 얇은 이 옷만 입고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충격으로 전복을 끊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오랫동안 여자가
집안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제가 어느 날 바닷가에 나왔는데 촬영장 한 편을 보니까
보행기를 밀고 보행기 아시죠
보행기를 밀고 천천히 걸어오는 해녀 삼촌 한 분을 보게 됐습니다
허리가 엄청나게 굽어 있었고 걸음도 정말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저분이 정말 물질을 하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간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젊은 스태프들보다 훨씬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파도를 읽고 숨을 조절하면서 움직이셨습니다
당시 해녀분들이 조업 이렇게 활동을 하셔야 되기 때문에
저희는 동력이 있는 배를 움직여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큰 보트 있잖아요
동력이 없는 그 보트를 저희가 노를 저어 가지고
해녀분들 옆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젊은이들이 젓는 이 보트는 점점 파도에 밀려서 나가요
그런데 해녀 삼촌은 바다와 한몸이 돼서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유스럽게 바다를 누비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떠내려가는 보트에서 한참을 그 해녀 삼촌을 바라보는데
어 그들의 몸에는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바다는 아직도 그들 몸속에 살아 있었습니다
이 물질이라는 것은 욕심을 부리거나
단 한 번에 방심하는 순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해녀들이 물 밖으로 올라오면서
내쉬는 숨 해녀분들은 항상 말씀하세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그 숨만큼은 남기라고
해녀분들이 물 위로 올라오면 휘파람 불듯이하는 숨비 소리라고 하는
그 숨소리를 들으실 수 있는데요
사실 그 소리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생과 사의 경계라고 표현합니다
그 자그마한 숨을 남기지 못한다면 바다에서 못 나올 것이고
그 숨을 남긴다고 하면 물 밖으로 나와서
마지막 숨을 내쉴 수 있는 것이죠
저희는 그 촬영을 계속할수록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습니다
매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들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녀라는 공동체는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서로의 장비를 확인하고
한 사람이 늦게 올라오면 끝까지 주변을 돌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함께 물질을 멈추고 경험 많은 상군 해녀가 초보 해녀들을 살폈습니다
보통 해녀는 그 잠수를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깊이에 따라서 상군 중군 하군
그리고 처음 시작하는 해녀를 똥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대장을 대상군이라고 합니다
대상군의 말을 따라야 되고 대상군의 이야기를 들어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똥군은 상군들의 코치를 받아야겠죠
어떻게 보면 바다에서는 혼자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집단 문화가 생겼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종종 경쟁을 강조합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해녀 공동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습니다
강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촬영 중에 한 삼촌께 물어봤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해녀를 하시겠습니까?’
그 삼촌은 한참 조용히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니다. 다시 태어나면, 그냥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다’
또 다른 삼촌에게 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삼촌은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미용실을 하면서 살고 싶다.
손님들 머리 해 주고, 저녁 되면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정말 미용이 하고 싶으셨나 봐요
근데 자기 꿈을 버리고 해녀가 되셨던 거죠
우리는 해녀를 보며 대단하다고 강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강함은 원해서 선택한 삶이라기보다
버텨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삶이었습니다
실제로 제주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해녀 민요 중에
‘딸을 낳으면 차라리 죽도록 엎어버린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말들을 처음 들어보면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딸 역시 자신처럼 평생 위험한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그 두려움,
두려움을 갖고 있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해녀의 삶은 고되고 위험했습니다
우리가 존경해 온 강인함이
정작 그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원하던 삶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저희는 처음 실감했습니다
저희가 해외 프로모션을 다니면서
송지효 배우와 대만에서 상영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뛰어다니는 프로그램 때문에 인기가 상당하더라고요
상영회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이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
바로 그 대목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다’
그 한마디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관객은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한 번도 선택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해녀를 굉장히 강한 여성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한마디를 듣고 처음으로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나라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사람들은 모두 알아본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텨낸 사람들의 얼굴을
그 순간 해녀 이야기는 더 이상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해왔습니다
남자는 원래 강하고 여자는 원래 약하다
그래서 남동생이 있으면 "넌 누나를 지켜야 돼"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오빠가 있으면 "넌 여동생을 지켜야 돼"
하지만 해녀는 그 반대를 증명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해녀는 여성도 강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건 성별이 아니라 삶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강인함을 보며 그 사람을 원래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서,
누군가는 포기할 수 없어서,
또 누군가는 자신 말고는 버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강해지는 겁니다
해녀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주변에도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그렇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게 바로 여러분들 자신일 수 있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도
송지호 배우는 보상이나 계약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해녀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왜 그렇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냐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직접 들어가기 보기 전에는 몰랐다
저분들이 왜 저렇게 서로를 챙기고 그렇게 단단한지
근데 알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결국 사람은 누군가를 이해한 만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송지호 배우를 보면서 그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새로운 부서로 옮기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제가 그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근데 그럴 때마다 제주 바다에서 만났던 해녀 삼촌들을 떠올립니다
두렵지 않아서 버틴 게 아니라 살아야 했기 때문에 버텼던 사람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버텨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바다에 들어갔던 사람들,
그분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그날 바다에서 올라온 송지효 배우가 했던 말,
강해질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고
그 말이 어떻게 보면 저에게 위로가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어떻게 보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강함은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삶이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버티고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강하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양평원x세바시 특집 강연회 '변화의 시선, 일상을 바꾸다' #3편
"강인함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 두렵거나 삶의 무게가 버겁다면,
경쟁 대신 서로의 숨을 살피며 공존해 온 제주 해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버텨야 할 이유가 있어 바다로 향했던
그들의 단단한 마음에서 우리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흔들리는 일상에서 나만의 태도를 선택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이선우 JTBC PD님의 강연을 통해 함께 채워봅시다.
* 이 콘텐츠는 '2025 제27회 양성평등 미디어상' 방송 부문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 이 콘텐츠의 주요 장면
01:38 BBC 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해녀를 선택한 이유
03:34 해녀 역사의 숨겨진 비밀
05:56 세월을 뛰어넘는 바다에서의 삶
08:13 경쟁이 아닌 '상생'의 공동체
09:25 다시 태어나면 미용실을 하고 싶어요
11:56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
12:45 버티고 있는 당신을 향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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